스티브홍쓰

가슴 뭉클했던 양준혁의 은퇴식, 레젼드 대우에 대한 표본을 제시하다. 본문

야구

가슴 뭉클했던 양준혁의 은퇴식, 레젼드 대우에 대한 표본을 제시하다.

비회원 2010. 9. 20. 17:54

(사진출처:Osen)

 많은 사람들이 추석 귀성길에 올랐던 9월 19일 오후, 대구시민구장에서는 화려한 잔치가 벌어졌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고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진정한 레젼드라 부를 수 있는 양준혁 선수가 은퇴경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잔치'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 화려한 순간 마지막 경기를 임하는 그의 모습을 봤다면 이 행사를 잔치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푸른피가 흐르는 사나이, 양준혁 >

 소속팀을 떠나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레젼드라 불리는 양준혁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표현은 '푸른피가 흐르는 사나이'가 될 것이다.
소속팀인 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유니폼 색깔인 '푸른색'이라는 단어를 통한 이 표현은 양준혁 그가 삼성이라는 팀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팬들 또한 양준혁이라는 선수에 대해 얼마나 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 삼성이 아니면 야구를 그만두겠다던 양준혁

 양준혁의 삼성에 대한 사랑은 신인시절 입단 비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1991년의 가을, 1992시즌 프로야구 신인선수에 대한 지명식이 열렸고, 당초 예상과는 달리 1차 지명에서 양준혁이 삼성의 지명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미 아마시절부터 국가대표의 클린업 트리오로 활약했던 그의 삼성 입단이 당연시되고 있던 상황에서 의외의 결과가 벌어진 것이었다.
당시 타선에 비해 투수력이 큰 약점으로 지적되던 삼성이 140Km대의 빠른 공을 던지는 계명대 출신의 김태한을 지명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2차 지명 1라운드에서도 삼성은 양준혁을 대신해 동봉철을 뽑았고, 양준혁은 결국 2차 2라운드를 통해 쌍방울에 지명을 받게 되었다.

 쌍방울의 지명을 받게 된 양준혁은 그해 겨울 폭탄발언을 하게 된다.
자신이 가고 싶었던 삼성에 가지 못했기에 상무 입대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무에 입단한 양준혁은 바로 다음 해 삼성에 1차 지명을 받게 되면서 그가 그토록 원했던 삼성에 입단하게 되었다. 양준혁의 상무행 선택 당시, 삼성과의 밀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삼성이라는 팀에 대한 양준혁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트레이드 파문에 휩싸였던 양준혁

 많은 의혹 속에서도 삼성행에 성공한 양준혁은 데뷔 첫해인 1993시즌 신인상을 시작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된다.
94시즌에는 86타점으로 타점왕이 되었고, 96년에는 타율(0.346)과 장타율(0.624) 그리고 최다안타(151개)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으며, 98년도에는 타율과 출루율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여기서 사건이 발생했다.
삼성이 해태의 임창용을 얻기 위해 98시즌 타율과 출루율에서 1위를 기록했던 양준혁을 포함한 3대1의 트레이드를 진행한 것이다.
이 트레이드는 양준혁에게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야구팬들의 비난 속에서도 상무 입대를 택하며 삼성 입단에 성공했던 그가 수위 타자로 시즌을 마친 상황에서 그것도 1대1의 트레이드도 아닌 3대1의 트레이드에 포함된다는 것은 삼성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선수 개인에 대한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다른 구단에 가기 싫다."라는 말과 함께 삼성의 비리(양준혁의 삼성 입단 당시의 밀약에 대한 공개)를 공개하는 등 어떻게든 삼성에 남으려는 노력을 보였던 양준혁은 결국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해태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 겪은 일들로 인해 선수협 구성에 앞장섰던 그는 또다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팀(LG)으로의 트레이드를 명령받게 되었다.

- FA취득으로 고향팀으로 돌아온 양준혁

 트레이트 파동과 선수 생명을 건 선수협 결성, 1998년 후반부터 힘든 시간을 보냈던 그에게도 좋은 소식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말이었다. 당시 10시즌을 국내 무대에서 뛰어야지만 주어졌던 FA제도가 9시즌으로 바뀌게 되었고, 제도변경의 수혜를 받았던 양준혁이 FA를 신청하게 된 것이다.

 물론, 양준혁의 FA 삼성행도 쉽게 이뤄지지만은 않았다.
당시 우선 협상 대상이었던 LG를 상대로 4년간 연봉 16억과 계약금 20억을 요구하였지만, 몸값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협상에 실패하였고 다른 팀들도 역시 같은 이유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양준혁에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김응룡 당시 삼성의 감독이었다.
기존 삼성 프런트의 생각은 당시 팀의 대표선수인 이승엽, 마해영과 포지션이 겹치며,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양준혁의 FA영입 계획이 없음을 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지만, 김응룡 감독의 적극적인 영입 의사로 인해 양준혁을 영입하였고, 최대 27억 최소 17억의 옵션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버렸던 삼성으로 다시 돌아오며 "삼성이 그리웠습니다. 이 파란 유니폼을 입고 싶었습니다."라는 말로 그동안의 설움과 삼성에 대한 애정을 동시에 표현하기도 했다.

양신의 기록들 (자료:동아일보)

< 깨지기 힘든 양신의 기록들 >

 양준혁을 '양신'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가끔은 만년 이인자였다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하는 그지만, 정작 그가 남기고 가는 기록들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는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비롯해, 총 8가지(최다 경기 출장 2135경기, 최다안타 2318개, 최다 타점 1389점, 볼넷 1380개, 7332타수, 3879루타, 351개 홈런, 1299득점)의 기록에서 최고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의 기록들은 시간이 지나도 깨어지기 힘든 기록들로 최다 안타의 경우 현역 선수 중 장성호와 500개 이상의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있으며, 타점의 경우 박재홍과 300점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는 상태이다.

 만약 그의 기록 중 몇 년 안에 바뀔 가능성이 있는 기록을 한 가지 뽑으라면 박경완과 120여 경기 차를 보이고 있는 최다 경기 출장 정도가 될 것이다.

(사진출처:NEWSIS)

< 감동스러운 최고의 은퇴식 >

 9월 19일 대구시민구장에서 치러진 양준혁의 은퇴식은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가장 알차고 화려했던 은퇴식이었다.
구단이 준비한 이벤트도 부족함이 없었으며, 경기를 임하는 선수들도 역시 최고의 스타를 떠나보내는 경기에 걸맞게 최선을 다하고 집중력이 높은 경기운영을 보였다.

-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구, 시타

 이 경기의 식전 행사에서는 축제 주인공인 양준혁과 그의 부친 양철식씨의 시타와 시구를 볼 수 있었다.

 18년 동안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양준혁 선수의 시타와 삼성의 홈 경기면 항상 야구장을 찾아 당신의 아들이 보여주는 활약을 지켜봤던 양철식씨의 시구는 삼성뿐만 아니라 8개 구단 모든 야구팬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기 충분했다.

 특히, 양준혁 선수의 은퇴가 발표된 이후,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독한 가난에 글러브를 사준 것이 두 번밖에 없다", "지금은 담담하지만 은퇴식에는 눈물이 날 것 같다"라는 말을 했던 양준혁선수의 아버지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 양준혁을 향해 시구를 던지는 장면에는 마음이 뭉클해질 수밖에 없었다.

- 약속을 지킨 김광현

 양준혁의 은퇴경기를 최고로 만든 것은 김광현의 최선을 다하는 투구였다.

 국내 최고의 좌완 투수로 불리는 김광현은 그의 프로 데뷔전 첫 피홈런의 주인공인 양준혁을 상대로 '삼진 3개를 잡아내겠다'는 표현으로 최선을 다하는 투구를 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힌 상태였고, 약속대로 세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삼진을 잡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두 번째 타석의 승부에서는 151km의 공을 던지며, 그 어느 때 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투구를 보여준 김광현의 모습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고맙다는 표현을 쓰는 삼성팬들을 훨씬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양신'이 마지막 은퇴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하는 장면은 누구나 한 번씩 꿈꿔봤던 장면이었겠지만,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홈런이라면 진정 추억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전력질주를 하는 양준혁의 모습 (사진출처:네이버스포츠센터동영상자료갭처)

- 마지막 꿈을 이룬 양준혁

 은퇴경기를 앞둔 양준혁은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경기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양준혁은 송은범을 상대로 2루수 땅볼의 공을 치게 되자 1루를 향한 전력질주를 했고, 경기장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팬들이나TV를 통해 시청하는 팬들 모두 양준혁의 전력 질주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양준혁은 그런 선수였다.
향상 꾸준한 성적을 내고, 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많은 기록을 가진 선수였지만, 많은 야구팬들이 그를 '양신'으로 부르게 된 진정한 이유는 팀의 간판타자이며 최고참급에 속하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봐도 당연히 아웃이 될 내야 땅볼 타구에도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1루로 전력 질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 야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려하게 보일 수 있는 홈런과 안타가 아닌 1루 베이스를 향해 전력질주 하는 것을 은퇴 경기의 마지막 목표로 삼은 것도 역시 팬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출처:삼성라이온즈)

< 레젼드의 대우에 대한 표본을 제시한 양준혁의 은퇴식 >

 양준혁의 프로야구인생 마지막 경기였던 9월 19일의 게임은 양준혁과 모든 팬들이 바라던 1루 전력질주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프로야구 역사에 많은 기록을 남기고 새로운 장을 열어갔던 양준혁은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조차도 후배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냈다.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볼 수 없었던 팀의 레젼드에 대한 완벽한 대우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선동열 삼성 감독을 비롯하여 이만수 SK 코치는 양준혁의 은퇴식에 대한 부러움을 표시했다.
과거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완벽한 기량으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투, 타의 스타들이지만, 화려한 은퇴식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만수 SK 코치의 경우 화려한 은퇴식은커녕 구단과의 마찰을 이유로 은퇴식을 가져보지도 못했던 선수였다.(선동열 삼성 감독은 일본에서 활동하다 은퇴)

 이런 문제는 이만수 SK 코치만이 겪었던 문제가 아니었다.
각 구단을 대표했던 선수들 가운데는 선수협등을 이유로 구단에 미운털이 박혀 은퇴식이 없었던 경우가 많았고, 때로는 팀의 핵심전력에도 불구하고 타 팀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미운털이 박혀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한 팀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팬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선수라도 철저히 성적위주의 논리를 펼치며 조용히 은퇴를 종용하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준혁의 은퇴식은 팬들의 눈높이를 높이고, 구단에게는 레젼드 선수의 은퇴식에 대한 기준선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당장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예고한 김재현의 은퇴식에 대해 SK팬들은 기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고, 구단은 그 수준을 맞추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김재현이 SK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는 할 수 없지만, SK의 부흥을 이끌었던 선수로서 그에 대한 대우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한국 프로야구의 레젼드 이종범의 은퇴식도 마찬가지다.


 양준혁이라는 한국 프로야구의 큰 별이 떠나 슬펐지만, 그가 남기고간 흔적에 미소지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10 Comments
댓글쓰기 폼